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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칼럼
제목 ”얘야 너는 뭐하고 있니?“

얘야 너는 뭐하고 있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번 미국 그레이스 갈보리채플 오 영길 목사님과 함께 방문한 필리핀 미션은 노년기에 접어든 나에게 커다란 도전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내가 필리핀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역적인 의미보다는 조카 아들 승재를 만나야했기 때문이다. 지는 2월 말일부터 소식이 전무하고 생사확인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오영길 목사님께서 20년간 후원해 오셨던 필리핀 선교지를 방문하신다고 하여 4명의 형제와 함께 길을 떠난 것이다. 3명은 늦게 티켓을 구매한 관계로 승재가 있던 필리핀 관광지 세부에서 합세하기로 하고 나와 지회 형제가 10일간의 여정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김포공항에서 미국에서 출발한 오영길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쥴리안 집사님과 만나 대한항공을 타고 마닐라로 들어갔다. 근자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오너 일가의 문제로 시끄러운 탓인지 대한항공 직원들은 더욱 친절해 보였으나 풀기가 없어 보였다.

 

마닐라 공항을 통해 우리는 국내선 항공을 갈아타고 두마게티 섬으로 날아갔다. 우리를 마중 온 현지 교회 스텝들의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상 달렸다. 내 생전 처음 타보는 버스였다. 버스라기보다는 엔진 위에 괴짝을 얹어 놓은 듯하였다. 달리면 달릴수록 먼지가 들어오는 비포장 길은 고사하고 모기와 싸움을 하며 짐짝처럼 실려가야했다.

 

한 시간 뒤에야 우리는 이문선 선교사가 운영하는 성경대학 켐프에 도착했다. 74살의 이 목사님은 지난 해 30년간을 함께 필리핀 선교에 고락한 사모를 떠내 보내고 기력이 쇠잔해진 상태라서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독신인 내가 더 위로가 되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는 갈보리채플 소속 엘머 목사를 따라 그가 관장하는 여러지역을 돌아보게 되었다. 길이 불투명한 산길을 따라 찾아간 곳에는 움막들이 보였고 그곳에는 눈망울이 움푹패인 졸망졸망한 아이들 수십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은 TV를 통해서 먼 아프리카에만 있는 줄 알았었는데 비행기로 4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얼핏 내가 어렸을 때가 떠올랐지만 그 때에도 우리나라는 이들의 형편과는 나았던 것 같았다. 가슴에서 분노같은 울음이 솟아오르며. 순간 이것이 주께서 맗씀하신 긍휼함이구나 느껴졌다.

 

30분을 논길을 걸어가 만난 움막도 있었다. 그 어린아이들이 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가슴 아팠다. 1시간을 더 달려 올라간 산위의 교회에는 전기조차 없었고 손바닥만한 터는 마련했으나 500불이 없어 교회를 짓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돌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나 잘 먹고 잘 입고 있었던가? 그러면서도 나는 얼마나 많은 불평을 쏟아 내었던가?

 

두마게티는 갈보리채플의 성지와도 같았다. 30여년 전 미국 갈보리채플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필리핀에는 공식적으로 29개의 갈보리채플이 세워져 있고 25년 전에 세워진 필리핀 성경대학 출신들에 의해 개척된 수십개의 작은 교회들이 제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 사역자들은 사례가 없다. 헌금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이 교회 가족들의 생계를 돌보아 주어야하기 때문에 정부지원을 받아오고 해외 후원을 모아야 한다. 병이 라도 나면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어린이들... 우리나라보다 잘 살던 필리핀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너무 잘살아 싸움박질 하는 정치인들이 미워졌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그러는 너는 25년 간 뭐하고 있었냐고 책망하셨다. 칠십이 된 나에게 주님은 또 다른 비전을 주신 것이다. 주여 주의 뜻을 이루소서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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